2019년 12월 19일자 미국 신문 1면을 꽉 채운 톱기사의 제목은 ‘트럼프가 탄핵됐다(Trump Impeached)’였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음을 알린 것이다. 하원에서 통과돼도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유죄판결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이를 강행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날 아침 신문을 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트럼프는 제17대 앤드루 존슨, 제42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하원이 탄핵을 가결한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트럼프에겐 치욕적인 기록이다. 양극화
미 하원이 트럼프 탄핵소추안을 표결하기로 한 지난 12월 18일(현지시각)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날씨가 매섭게 추워졌다. 우버를 타고 의사당 쪽에서 내리는데, 뭔가 구호 같은 것이 쓰여 있는 흰 종이를 든 남자 두 명이 차로를 향해 서 있었다. 한 명은 ‘탄핵에 찬성하면 경적을 울리세요’, 다른 남자는 ‘탄핵을 원치 않으면 경적을 울리세요’라고 쓴 종이를 각각 들고 있었다.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같은 팀이 아니에요”라며 서로를 외면했다. 우연히 거기 같이 서 있게 됐을 뿐이란 것이다. 의사당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이후 미국 대선판이 억만장자 대결장이 된 것 같은 분위기이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홍보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미국을 재건하자’ ‘미래를 위해 싸우자’란 슬로건을 걸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 재산이 약 3조원이라는데 블룸버그는 58조원쯤 된다고 한다. 한 주간지는 최근 블룸버그의 선거전략이란 트럼프에게 10조원쯤 뚝 떼어주고 백악관에서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니겠냐는 농담을 싣기도 했다.TV 리얼리티쇼 진행자이자 억만장자 사업가에서 아무런 공직 경험 없이 곧장 백악관으로 뛰어든 트럼프의
1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NATO)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런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모두를 계속 주둔시키는 게 미 안보 이익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트럼프의 대답은 “토론할 수 있다. (주둔이든 철수든) 두 방향 다 가능하다”였다. “만약 계속 주둔한다면, 그들(한국)이 좀 더 공정하게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 말은 미군 철수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뜻으로 해석됐다.미국 정부를 지칭할 때 ‘미국’ ‘트럼프 행정부’ 또는
11월 28일은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의 설이나 추석 때처럼 거대한 귀향 행렬과 이로 인한 교통체증이 이어진다. 외국인 입장에선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때가 가장 쓸쓸한 외국살이의 날이기도 하다.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한국에서도 중요한 사회·정치적 이슈가 진행되고 있을 때 명절이 끼면 이슈가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잉글랜드의 집에 가는 친구는 그러나 “엄마가 만들어주신 칠면조 구이를 먹으면서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왜 트럼프와 탄핵 이야기를 하겠어?”라고 했
워싱턴 중심가를 다니다 보면 검은색 대형 SUV 등 자동차의 행렬을 자주 만난다. 고위인사와 경호원을 가득 태운 긴 자동차 행렬이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면 큰 정부 행사가 있거나 외국 정상이 방문했다는 뜻이다.다른 고위급들과 달리 대통령의 행렬엔 맨 끝에 구급차가 따라붙는다. 대통령 건강과 관련해 긴급상황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백악관에도 의료시설이 상당 부분 갖춰져 있어서 웬만한 치료나 검사는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토요일이었던 지난 11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리에 월터리드 국립 군의료센터를 찾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블룸버그가 워낙 거물이라 그가 판을 흔들 수 있을지를 다들 유심히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보다 나이도 많고 재산도 많다. 트럼프는 73세에 재산이 3조원인데 블룸버그는 77세에 58조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에서 9번째 부자이다. 그러고 보니 내년 대선 도전자들은 70대가 주류이다.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나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 관심을 풀어서 말하자면, 이들은 대통령이 되기에 너무 많은 나이인가, 대통령이 되기에 나이가 많다는 건 어느
트럼프 대통령은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잡지도 자신의 사진이 표지에 나온 것 말고는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 자신은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트럼프 자신이 직접 글을 쓰기보다는 늘 공동저자나 대필자가 있지만 어쨌든 그가 인기 있는 책을 써낼 수 있는 콘텐츠의 소유자인 것은 맞는다.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트럼프가 썼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쓴 책을 수도 없이 사들였다. 트럼프의 시대를 워싱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중에 책을 쓸 생각으로 사들였으나 너무 많아서 이젠 포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김정은과 통화한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워싱턴에선 실제 통화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마냥 아니라고만 할 수 없는 건 그가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우려를 덧붙인다.트럼프란 이름은 “예측하기 힘들다”와 동의어이다. 외교든 경제정책이든 트럼프와 관련해 전문가 인터뷰를 한다고 하자. 전문가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치를 내놓고는 마지막에 꼭 한마디 한다. “하지만 트럼프니까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지
워싱턴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트럼프가 재선될 거라고 생각합니까?”이다. 화제가 마땅치 않으니 꺼내는 얘기일 뿐 특별히 어떤 답을 기대해서 묻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재선 여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정말 크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20년 대선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중요하다. 워싱턴의 외국 기자들에게 다음 대선은 ‘예측불허 트럼프 월드 취재를 계속하며 마음 졸여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지금은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는 너무 이르다. 그래서 이런
트럼프 대통령은 몇 년 전 북한을 압박하며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란 말을 처음 썼다. 그때만 해도 트럼프는 당장이라도 평양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미·북이 극적으로 정상회담에 합의하기 전까지 한동안 워싱턴과 서울에서는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실제로 있었다. ‘화염과 분노’는 이후 트럼프의 취임 초 백악관의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책의 제목으로 한 번 더 유명해졌다.탄핵정국에 들어선 트럼프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화염과 분노’라는 말이 다시 연상된다. 트럼프는 늘 화가 나 있고 늘 어딘가를 향해 불
워싱턴의 취재현장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장면 중 하나는 외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합동 기자회견을 할 때 미국 기자들이 외국 대통령은 무시해버리고 미국 대통령에게 국내 문제에 대한 질문을 퍼부을 때였다. 한국 대통령이 방미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늘 있었다. 때로는 그런 장면이 결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을 만날 기회를 잡은 기자들이 인정사정없이 가장 중요한 현안을 물고 늘어지는 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 문제로 탄핵 국면에 빠져든 상황에서 최근 미국과 핀란드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 정상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우크라이나 의혹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은 탄핵정국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트럼프는 탄핵 위험에서 빠져나온 지 몇 달 되지도 않는다. 취임 직후부터 뮬러 특검이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는 동안 탄핵 가능성에 시달렸다. 조사 결과 특별한 문제가 나오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가까스로 진정되는 듯했다.우크라이나 의혹은 좀 더 구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규모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2020년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
9월 초 바삐 돌아가기 시작한 워싱턴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해임이었다. 해임 그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돌아, 볼턴 사임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 험하게 그만두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트럼프와 볼턴은 나름의 성공신화를 쓴 인물들이다. 둘 다 남의 입장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강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최근 백악관에서 새나온 잡음만 들어도 둘이 서로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미스터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그동안 트럼프의 참모들이 숱하게 잘려 나갔다
서점에 들렀다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쓴 회고록 ‘콜 사인 카오스(Call Sign Chaos)’를 샀다. 그리고 잡지 코너를 둘러보다가 ‘트럼프의 장관’이란 제목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한 기사가 실린 주간지 ‘뉴요커’를 샀다. 매티스는 지난해 말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기를 들고 물러났고, 폼페이오는 여전히 트럼프와 가장 죽이 잘 맞는 장관으로 워싱턴을 지키고 있다.매티스나 폼페이오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안보정책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트럼프식 외교·안보를 수행하느라 고생한 참모들이다. 이들이 막후에서 얼마
지금 사람들의 관심에선 잠시 벗어나 있지만 조만간 다시 뜨거워질 이슈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이다. 이 문제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트럼프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협상’이란 분야인 데다가, 한·미 동맹 외에 당장 안보의 대안이 없는 한국으로선 별다른 지렛대가 없어 보여서이다.몇 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위한 ‘새로운 공식’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맹국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을 최대한 인상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며 첫 적용 대상은 한국이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준 트럼프 행정부 관리는 한국의
오래전부터 세계 최대의 섬이라는 그린란드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사고’ 싶어 한다. 최근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뉴스를 처음 봤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담을 쌓겠다고 했을 때처럼 21세기에 이게 무슨 허황한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멕시코 장벽 때도 그랬듯이 트럼프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화들짝 놀란 덴마크가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고 펄쩍 뛰자 트럼프는 두 주 앞으로 예정된 덴마크 국빈방문을 연기해버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한 모금행사에서 어린 시절 부동산업자인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받으러 다닌 일을 언급하며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고 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특히 미국의 안보 지원에 나라의 안위를 걸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라로서, 이보다 더 모욕적인 얘기도 없을 것이다.트럼프는 뼛속 깊이 부동산개발업자이다. 그는 연설은 물론 책에서도 부동산 사업을 할 때 있었던 일을 자주 언급한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워싱턴의 조지타운 지역에 가면 ‘덤바튼옥스(Dumbarton Oaks)’ 박물관과 연구소가 있다. 오래된 저택을 개조한 이 박물관엔 소규모 연주회 장소로 쓰였던 작은 홀이 있다. 바로 유엔이 태어난 곳이다.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가을 그 콘서트홀에서 유엔 창설을 위한 예비회담이 열렸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워싱턴에 국제회의를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 큰 저택의 연주실을 회의장으로 썼다. 그래서 그 회의를 ‘덤바튼옥스 회담’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유엔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틀이었다. 트럼
미국에서 인종차별만큼 민감한 이슈도 없다. 정치인이 인종 문제와 관련해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정치 인생이 파탄 나는 건 시간 문제다. 보통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무신경한 표현으로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조심한다. 하지만 금기를 깨는 걸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조차도 개의치 않을 때가 많다. 대선후보 시절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를 주장해 세상을 뒤집어놓고도 대통령이 됐으니까.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트위터에 미국 민주당의 여성 초선의원 4명에게 “너의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썼다. 트럼프가 겨냥한 의원들은 푸에르토리코계인